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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과 조각술
노해나(아르코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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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오래된 주제는 “몸으로부터의 조각”이다. 조각은 인간의 신체처럼 뼈대를 가지고 중력에 저항하며 기립한다. 조각가가 조각을 만들 때 이러한 구조를 염두해두고 만들지 않더라도 조각은 전시장에서 인간과 대등한 몸으로 서 있기에 휴먼스케일을 고려한 매체이다. 조각의 탄생부터 생애, 그 운명은 몸의 자리를 발생시키는 방식과 연결될 수 밖에 없다. 때로 조각은 인간의 조건과 가까운 매체이다. 그것은 추상, 구상 조각이 그렇듯이 몸에 기반한 인간의 조건과 심리를 반영하기 때문이고, 3차원 조각이 전시장에 놓였을 때 관람객의 신체가 조각의 물질성과 대면하며 몸의 경험을 발생시키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민환의 조각은 해체된 살과 피부, 뼈의 이미지로 꽤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2022년 작업 < 일어나는 살갗, 저무는 여백 >은 살의 표피의 율동이 조각 내부에서 공간감을 형성한다. 여기서 보이는 살갗의 표현 방식은 2023년 < 풍경조각 > 연작에서 부분적으로 등장한다. < 풍경조각 >은 안민환이 인간이 포착할 수 없는 자연, 풍경의 거대함에 대한 심상을 조각으로 조형하는 연작이다. 이 연작은 풍경의 스케일이 인간이 포착가능한 범위로 축소되고, 휴먼스케일의 조각으로 조형된다. < 풍경조각 > 연작에서는 인간에 의해 포착불가능하고 광활하고 알 수 없는 자연의 심연은 반복되는 추상 패턴으로 표현되고, 살갗 혹은 땅의 질감을 닮은 비정형의 덩어리가 결합된다. 이 조각은 정면성보다는 삼차원으로 인식되는 덩어리여서 조각 주변을 회전하면서 보면, 나뭇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휘어지면서 비틀어진 표피의 역동성과 정지상태를 경험할 수 있다. < 풍격조각 1 >에서 보듯 풍경은 소형화되어 마치 수석과 같은 조형물의 일종으로 만들어 진다. 수석은 인간이 자연을 소유하는 일종의 장식품과 같은데, 안민환의 < 풍경조각 >은 인간이 자연을 재현하고 소유하는 방식인 수석의 방식처럼 거대한 풍경을 소형화하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풍경에 대한 심상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이를 인간적인 규모로 제시한다.

2.
헨리 무어와 바바라 햅워스는 인간의 심리적 요소와 추상의 요소가 융화되는 방식을 지향하였는데, 조각에서 이루고자 했던 양식적인 모순의 과정이기도 했다. 이들은 추상을 추구하였지만 여기에서의 추상은 인간과 인간의 주변의 사물처럼 어디서나 찾을 수 있는 매우 가까운 형태에 대한 반응으로써 다가갔다. 그렇기 때문에 대상과 형태는 일반화-추상화를 거치는 동시에 구상성을 담지하고 있다. 이들이 추구하는 추상성은 구축주의, 혹은 레디메이드처럼 형상을 버리고 인간의 요소를 제거하여 사물성을 강조하는 작업들과 비교하면 명확해진다. 무어와 햅워스가 지향하는 이러한 조각은 재료에서 발견된 형상을 추상의 형태로 일반화하지만, 인간적 요소를 제거한 탈인간화가 아닌 인간의 심리적 요소를 반영하는 ‘재인간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들이 말하는 조각은 인간의 심리적, 물질적 조건이 반영된 인간 중심의 조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가진 경험과 감정은 추상조각 안에 거주하며 지극히 인간적이고 신체를 연상시키는 조각 매체로 표현되었다. 주변에서 가깝게 발견되는 인간에게 유의미한 대상, 그리고 본질적 요소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조각은 인간의 신체 경험과 재료를 다루는 과정에서 빗어지는 형상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안민환의 조각은 자연을 경험한 인간의 내적 체험을 다루고 있으면서 앞서 말했듯이 재료를 다루는 과정에서 발생한 추상화 속에 인간의 심리적 요소를 거주시킨다. 거기에 더해 < 풍경조각 > 연작에서 그가 풍경을 다루는 방식은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상기하게 만든다. 그의 조각은 자연으로부터 가져온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이 투사된 인공조형물이 작동하는 방식, 이를테면 분재, 테라리움, 인공정원, 수석을 적극적으로 참조한다. 이렇게 자연을 소형화하는 방식은 작은 자연을 접하도록 가공된 나름의 제작과정과 취향으로 존재하는 기술이다. 작가가 자연을 조형하고 가꾸는 기술과 방식을 조각의 방법론으로 적극 활용하는 것은 < 원 뿔 >, < 무엇도아니지만무엇도가능한덩어리 >에서 볼 수 있다. 이 작업들은 이끼를 조각의 몸체인 라텍스 표면에 이식하였는데, 이 방식은 ‘테라리움’이라는 유리용기 안에 작은 자연을 조성하는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 범굴암 5.8개척 분재 >에서 조형의 행위는 미니어처 나무인 ‘분재’를 만드는 행위와 겹쳐지기도 한다.
 
3.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또 다른 작업 < 범굴암 5.8개척 >은 안민환이 취미로 하고 있는 암벽 클라이밍 도중에 겪었던 아찔하고 막막했던 경험을 조각의 물질로 전환한 것이다. 그가 공유한 제작의 과정은 이렇다. 암벽등반 중에 카메라로 촬영한 범굴암의 이미지를 포토캐치 프로그램으로 추출해 3D 데이터를 만든다. 암벽 데이터를 추출하고 3D로 출력된 결과값이라 할 수 있는 5개의 이미지를 소조하는 과정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 이 추출의 작업은 데이터 프로그램을 도구로 이용하지만 이후 과정은 작가의 눈과 손의 판단에 의한 제작하는 소조의 과정을 거친다. 작가는 첫 번째 순서의 3D 출력 이미지를 보고 부조를 만들고, 나머지 네 가지의 추출 데이터 이미지를 참고로 모양을 덧붙여 나가며 원형을 제작한다.
그렇다면 이번 작업에서 변주된 조각 과정은 그간 작가가 풍경을 조각에 담으려고 해왔던 시도와 어떤 접점이 있을까. 앞선 < 풍경조각 >은 자연과 풍경에 대한 심상과 인상에 의지하여 경험과 재료의 조합과정에서 추상으로 도출되었다고 한다면, 이번 작업에서는 카메라와 3D와 같은 기계를 도구로 삼아 매체의 변환과정을 거치면서 심상에 의해 도출된 추상과는 다른 결과값을 얻었다. 암벽 등반을 하는 신체 경험과 흔들리는 몸의 움직임을 담은 카메라, 이로부터 추출한 촬영된 이미지, 바위의 표면 이미지를 3D 입체로의 변환한 이미지를 거치며 기술이 개입된 추출된 데이터 과정은 일반화-추상화의 과정을 개념적으로 인지하게 하였다. 풍경에 대한 추상-일반화라는 그의 작업에서 발견되는 작업의 원리를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다.
그다음 제작의 단계에서 작가는 추상의 데이터를 다시 조각가의 눈과 손으로 다시 구축해나가며 데이터가 만들어낸 추상을 재현한다. 일련의 과정으로 만들어진 3D 이미지를 흙으로 다시 빚어 부조로 만들며 추상을 재현하기를 시도한다. 한편으로 경험을 재현하는 지점도 포착된다. 제작된 바위 표면 위에 암벽등반 하는 작가의 손이 미래주의 화풍처럼 스케치되어 여러 개 덧붙여 표현된 것이 그것인데, 손의 움직임과 속도감을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소형화하여 표현하였다. 바위를 오르는 것을 추상화된 바위의 표면 위에 형상화한 것은 경험을 재현하고자 하는 조각가의 욕망이 발견되는 지점이다.
< 범굴암 5.8개척 >은 그간의 < 풍경조각 > 연작과 연동해서 봤을 때, 즉물적으로 조각의 과정에서 추상으로 표현했던 과정을 기술 매체를 통해 단계화시켜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 풍경조각 >이 전통적인 조각의 추상화 방식을 따랐다고 한다면, < 범굴암 5.8개척 >에서는 기술적 개입을 통해 자신의 추상 과정을 개념적으로 확인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작가는 다시 눈과 손의 감각으로 돌아와 손수 추상을 재현하는 방식, 그리고 경험을 재현하는 방식을 택함으로써 그의 작업이 추상 안에 거주하는 인간적인 욕구와 욕망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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