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영토인 당신 자신으로 퇴각하지만, 그조차 평화로운 거처가 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재건축 해야하는 미완의 프로젝트로 변모한다. [1]
안민환은 평면, 철실을 격자로 촘촘히 엮은 다공성의 뼈대를 뜯어 올리며 살을 덧붙인다. 이는 바닥을 더듬으며 마주한 틈에서 끌어낸 그물처럼 난데없고 잠재적이다. 살성을 입은 입체는 근간, 그 뼈대를 숨기며 변태한 종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CUT-OUT》은 강박적 갱신, 새로운 거처를 향한 무수한 이동이며 언뜻 우연적인 여정을 전개한다. 작품들은 담담히 자신의 면적 즉, 철망의 크기一전시에서 철망의 사이즈는 작품의 제목을 지칭一를 밝히며 전시장에 들어온다. 영토는 해체되어 수직적으로 위태롭게 건축되고, 작가는 자라나는 볼륨을 맞이하며 이에 생명성을 의탁한다. 솟아오를수록 열리는 문들은 아가미가 되어 숨쉬기 시작하고, 간혹 흙과 이끼가 끼거나 예기치 못한 물질一아이볼트, 카라비너, 레진, 쇠사슬一과 연동되어 낯선 유기체로 확장된다.
작가는 반복적인 수행을 거듭하는 한편, 영토의 근원, 채굴의 시작점 형태를 찾는다. 구, 직면체 전시 《CUT-OUT》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들을 파내거나 들춰보며, 뿌리에 다가가려 한다. 마치 혀를 내밀고 있는 듯한 세 조각 < 구 >, < 원뿔 >, < 육면체 >는 가느다란 다리로 몸체를 지탱하고 있는 듯한 형상을 보이며, 이는 위태로움과 기묘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대지(작업의 근간)는 스스로의 살갗을 벗겨내는 고통을 이겨내며 이를 반복해 새로운 가죽을 입는다. 작업의 주재료는 우레탄 폼으로 부풀어 오르는 성질을 가지나, 작가는 이를 평면으로 짓누르며 물질이 가지는 고유성을 거스른다. < 프레임 >(2024)은 작업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토대를 까는 일’에서 기인해 전시장 중앙에 놓이며, 기생적으로 자라나는 조각의 양분이 된다. 간혹 평면에서 솟아난 유선의 껍질은 또 다른 시선의 틈을 만들어내며 조각으로 진화하게 될 평면을 슬쩍 비춘다. 이러한 중도의 과정은 < 회화-좌대-조각 > 시리즈로 나아가, 작업 주변의 기능체에 대한 관심으로 도착한다. 비단 주체성을 가지는 것은 작업뿐만이 아니며 이는 작업을 구성하는 기능체로, 기능체를 세운 물질로 자유로운 이항을 허락한다. 유용함과 무용함, 평면과 입체, 뿌리와 열매같이 이원론적 분류를 거부하고, 그 사이 세계를 중첩한 층위를 가시화하며 복잡하게 연결된 망(network)에 새로운 작동 방식을 제안한다.
《CUT-OUT》은 안민환의 태도적 보고(report)다. 그가 영토 내로 끌어들인 변용하는 주체들은 본래의 형태를 어기며 중력에 반하는 방향으로 자꾸만 뻗어나간다. 작가는 과정에서 탈각된 껍질들을 다시 뭉쳐 새로운 살갗으로 복귀시키며 끝없는 순환으로 접속한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아래와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선 - 면 - 면을 분리하기 - 분리한 면을 세우기 - 세우면서 발생하는 형태를 인식하기 - 볼륨에 살성(flesh)을 부여하기 - 살 위에 다종다양한 생명을 이식하기.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생기는 형태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종으로 변태하거나 전례 없는 종으로 읽히게 된다. 그는 작품과 작품의 부산물의 경계를 유기체적으로 인식하는데, 이러한 인식은 중도(amist)의 과정에 있는 변태하는 접합부, 즉 살아있는 이음새로 환원된다. 이때, 두 전통적인 미적 매체(조각과 회화)를 이어내기를 시도하며, 스스로 묻는다. 중간을 창조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작가는 창조의 영역을 택하기보다는 변모하는 장면을 포착하는 것 선택한 듯 보인다. 작가의 회화에 대한 접근은 붓으로 그려 ‘형상을 만들어냄’이 아니다. 그는 붓으로 평면을 쓸어내며 물감을 모으고, 뭉친 물감은 자연스레 자국을 생성한다. 자국들은 일종의 주름과 같이 일렁인다. 일렁이는 형상은 언뜻 산수의 그것과 닮은 ‘풍경(landscape)’을 만들어내며, 평면의 전유로 읽힐 수 있는 자욱들을 입체로 이식하기에 이른다. 이를테면, < 풍경조각 >(2023)시리즈에 새겨진 듯 보이는 반복적인 (마치 나이테를 두른 듯한) 회화는 입체의 면면에 새겨져 경계를 지워내며 다면의 장을 융성하고, < 풍경조각 6: 오름 >(2023)과 같이 액자에 기생하는 작은 조각들, 언뜻 훼손된 조각 같은 좌대(혹은 반대일 수도 있다)들은 그의 주매체 간의 이식의 시도로 볼 수 있다. 작가는 공간을 점유하는 하얀 프레임이 조각들을 들어 올리며 평면을 적극적으로 탈출할 태도를 보이면서, 그것의 가죽과 같은 합판이 곡선으로 치솟으며 내부의 구조를 바깥으로 내비치도록 한다. 아주 무른 반죽, 끈적하고 액체적인 상태의 것을 거쳐 완전히 단단하지 않은 몸체로 변신시키고, 이는 명백하게 전환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만, 물론 주어진 영토는 한정되어 있었다. ‘한정된 영토’는 안민환의 작업에서 필수 불가결인 요소다. 철망의 사이즈, 그 규격화된 평면의 전개도를 입체적으로 확장하는 것. 그것이 작가가 집요하게 천착하는 새로운 존들을 위한 터전을 마련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6년 만에 개인전으로 쌓인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는 이 전시를 통해 스스로 질문한다.
당신의 영토는 어디고, 어떻게 그곳에서 탈출하려 하는가? 작가는 답한다.
탈출은 변신이고, 종적 발생과정에 계속된 진화의 변주이며, 미완의 공간을 남겨두는 용기라고.
글. 이지언
[1] 윤원화, 「비거주자들의 필드워크」, 『잠재공간속의 생태학』 (2023), 미디어버스, p 117.